완벽주의라는 걸림돌


(아티스트웨이, 208~209p)

틸리 올슨은 완벽주의를 ‘예술에 대한 칼’이라고 정확하게 부른 적이 있다. 당신은 그것을 ‘바로잡기’나 ‘더 잘못되기 전에 고치기’, 혹은 ‘기준을 갖는 것’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완벽주의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나 기준을 갖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완벽주의는 당신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다. 그것은 세부적인 것에 얽매여 꼼짝 못 하게 만들고 전체를 보는 안목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올가미,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폐쇄적인 시스템이다. 자유롭게 작업하고 모든 것을 끝낸 후에 실수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하는 대신, 우리는 세세한 것에만 집착해 전전긍긍한다. 우리는 자신의 독창성을 열정이나 자발성이 없는 획일적인 것으로 고치려 한다. 재즈 연주자인 마일즈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실수란 없다.”

완벽주의자는 전체 시를 망칠 때까지 한줄의 시구를 고치고 또 고친다. 완벽주의자는 종이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초상화의 턱선을 고치고 또 고친다. 완벽주의자는 시나리오의 첫 장을 고치느라고 다음 장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완벽주의자는 관객의 눈치를 보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일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 결과를 저울질 한다. 완벽주의자는 논리적인 뇌로 무장한 사람이다. 비관정신이 그의 창조적인 세계를 완전히 장악해서, 뛰어난 묘사도 냉소적으로 평가한다.

“음, 이 쉼표는 뭐지? 이 철자는 또 뭐야?”

완벽주의자에겐 초벌작업이나 밑그림, 준비운동이 없다. 모든 일을 처음부터 완벽하게 해야 한다. 완벽주의자는 일을 해나가는 도중에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고 나서 윤곽을 잡고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다.

그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아무데도 가지 못한다.

완벽주의자는 절대로 만족하지 못한다. 완벽주의자는 절대로 “꽤 괜찮은데, 계속해야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완벽주의자에겐 언제나 개선의 여지가 있다. 그들은 이것을 겸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이기주의이다. 완벽한 대본을 쓰고, 완벽한 그림을 그리고, 완벽한 연극을 공연하라고 우리를 채찍질하는 자만심이다. 완벽주의는 최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추구한다. 자신이 하는 일은 결코 만족스러울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다시 시도해야 한다고 추궁하는 내부의 적이다.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

폴 가드너는 이렇게 말했다. “그림에는 끝이 없다. 다만 재미있는 시점에서 멈추는 것이다.” 책을 쓰는 작업에도 끝이란 없다. 어떤 시점에서 매듭을 짓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영화 역시 절대로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떤 시점에서 손을 놓고 다 됐다고 하는 것이다. 손을 놓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창조적 작업의 일상적인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볼 수 있는 관점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Posted by inesita